2006년 영화 <하프 넬슨>의 시작 부분을 보면 중학교 역사 교사인 댄이 아이들에게 역사의 정의에 관하여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낮과 밤, 왼쪽과 오른쪽, 당신과 나, 앞과 뒤, 흑과 백, 다수의 불평등주의자와 소수의 평등주의자... 의 대립으로부터 변화는 어루어진다고.
즉 서로 대립되는 낮과 밤이 하루를 만들고, 왼쪽과 오른쪽이 균형을 이루고, 당신과 내가 관계를 형성하고, 흑과 백이 화합하여 평화를 이루고, 그리고 다수와 소수가 싸워 평등을 상식으로 만들어 낸다고. 그리고 역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진보하는 것이라며 댄은 아이들에게 강조하고, 그 뜨거웠던 역사적인 사례들을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를 통하여 풀이해준다.
나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이러한 (opposite) 대립 구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씨앗으로 역사의 변화와 진보가 가능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리고 소수일지라도 대립에 선다는 것의 중요함을 믿는다. 대체로 역사학자나 철학자들도 그렇게 말해왔다고 한다. 역사의 본질은 계급의 투쟁, 나와 나 아닌 것의 투쟁, 도전하면 응전하고,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 어쩌구 저쩌구... 대충 이런 관점에서 이번 6.2 지방선거를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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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과 고열에도 견딘다는 그 매직의 "1번"을, 국민들은 그동안 받을대로 받아 체내에 쌓여만 가던 분노의 고열로 조용히 녹여 버렸다. "어리석은 것들. 니들이 뭘 알아..." 라며 독선적이고 오만하게 덤볐던 1번의 세력들에게 국민들은 눈을 흘기며 "이것들이, 흥 아니거든. 너희들 우리 잘못 봤어..." 하며 어뢰도 지우지 못했다는 그 파란 "1번" 얼룩을 투표라는 지우개로 여기저기서 쓱쓱 지워나간 것이다.
아니 진정으로 어리석은 것은 1번이었다. 1 >> 2 라는 전화 여론 조사 결과를 믿고 까불다니. 요즘 시대에 누가 집전화를 이용한다고. 어르신네와 아줌마들 정도나 쓸까. 핸드폰, 아니 이제는 스마트폰 끼고 살면서 미디어가 개인에게 밀착하여 따라오는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참으로 뭥미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깨달았을까. 보수도 진화하려면 진보미디어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달리 말해 나와 내가 아닌 것의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황당한 것은 1번 세력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마사지 전문 방송과 언론을 통해서 심각하게 오염된 채 전달된 왜곡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 정보를 믿었다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선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유선 시대 방식을 들이대어 나온 결과였다. 그것을 이 시대 엘리트를 자처한다는 사람들은 다 믿었고 엘리트는 아니지만 그냥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국민들은 믿지 않았다. 정치인이건 언론인이건 이 나라의 프론트에서 활동하는 그 머리 좋다는 이들을 한순간에 구시대 헛똑똑이로 만든거다.
진리는 단순하다. input 이 true 라면 output 은 true 가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output 이 false 가 나올 경우 조치를 취할 수가 있는데 input 이 false 이면, output 은 true 인지 false 인지 뭐가 나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조치가 불가능하다. 애써서 방송과 신문을 장악하여 그 old & wired 미디어에 거짓 입력을 쑤셔 넣었는데 그 old & wired 미디어에서 나온 출력이 참이라고 믿을 정도의 어리석음. 하지만 생각해보라 내 나이만해도 new & wireless 를 이용하는데.
1번 세력들은 출력이 참이라고 믿기 전에 입력이 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덤볐어야 했다. "늑대다" 두 번을 외친 양치기 소년이 세번째 "늑대다"를 외치고 늑대에게 당한 이유가 그런거다. 거짓 입력을 계속해서 넣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입력이 참이건 거짓이건 출력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1번의 외침이 허공을 돌다 오는 부메랑이 안되려면 애당초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까 참과 거짓 그 대립의 속성부터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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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경기도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이 결과에서 국민들은 어리석지 않은 것 뿐 아니라 어찌 보면 영악하기까지 하다는 생각마저도 들 정도다. 시장은 여전히 1번으로 남겨 놓고는 시의회는 2번으로 채운 것을 보면.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1번과 1번의 조합은 지금까지 보아 왔듯이 극악무도했고 2번과 1번의 조합도 최악이었다. 그리고 2번과 2번도 선은 아니었다. 아니 비교적 끔찍했다. 지금까지 보아 왔듯이. 그렇다면 1번과 2번은? 작용 반작용으로 견제가 작동하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현명한 조합이라고 여겨지는 이 선거 결과에는 강남3구의 도움이 컸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의 그 시장같은 인물을 원한 것일까. 죽어가는 1번에 대한 몰표가 나왔다고 하니까. 그러고 보니 1번과 1번의 조합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역시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야 후라이가 완성된다. 흰자와 노른자. 함께 있어야 계란 후라이다. 그리고 서로 치열하게 끓어야 보다 맛있는 후라이가 된다. 하여간 이 대립 구도는 실은 서울은 계급 사회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완전한 증거가 된 셈인데 앞으로 좀더 치열한 계급 투쟁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치열해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2번의 분열에 따라 이렇다할 대립없이 1번과 1번 조합의 막대한 파괴력으로 언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두 장악되었다. 이들은 하지 말라는 대운하 파면서 생명줄을 파괴했고,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와 온 나라를 불안에 떨게 했고,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렸고 (결론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지는 않지만), 합의된 사안에 대해 억지 주장을 펼쳐 무산시켰고, 비과학적 증거와 궤변으로 천안함을 조작하는 비상식을 믿으라고 강요했으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서 불평등을 가르쳐왔다.
이쯤되면 1번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대립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생명줄인 강을 죽이면 안되고,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면 안되고, 방송을 장악하면 안되고,약속을 했으면 지키고, 천안함은 그 진실을 밝히고, 아이들에게는 깨끗한 음식을 골고루 주어 평등과 행복과 나눔을 가르치고 그래서 배움의 가치를 깨닫게 해야 한다는 1번과 대립되는 생각들 말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2번을 지우개로 선택하여 삼아 일단 1번을 한번 지웠다. 누구는 집값과 교육비의 모순이라고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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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명심할 것은 상대적으로 거짓 입력이 덜 들어오는 new & wireless 미디어를 통해 뭔가를 깨닫고 당장 행동하고 싶어도 국민들에게 주어진 것은 "2번"이라고 쓰여진 지우개 뿐이었다는 점이다. 펜이 아니라는 거다. 즉 2번의 가치는 1번을 지우기 위해서 우리들이 당장 손에 쥘 수 있었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거다. 이것이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며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이들은 아마도 3번이라는 펜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1번을 어떻게 해서든 지워야 해"라는 다급한 마음이 없었다면 2번은 결코 선택되지 않았을거다.
중요한 것은 2번 세력들이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1번과 대립되는 가치를 날카롭게 세우는 펜이 되어야 하고 그 펜으로 1번이 지워진 자리에 2번이라고 써야 한다는 거다. 영원히 지우개로서만 살 수는 없다. 그러자면 한발 더 나아가는 소수의 3번과의 대립(또는 도움)이 대단히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다수의 1번 또는 2번, 대립없는 끼리끼리는 그렇게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고 2번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3번과의 대립은 필수다. 나는 이번 선거를 통해 1번에 비해 2번 뿐만이 아니라 3번도 치고 나오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꼭 그렇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2번과 3번 세력들에게 바라는 바는 단 하나다. 지우개로 남지 말고 연필이 되라는 거다. 2번이 지우개로 남지 않도록 3번은 연필깎기가 되어 부지런히 2번과 대립하며 깎기를 바란다는 거다. 그래서 연필이 되어 "4대강 사업 전면 중단"이라 쓰고, "친환경 무상급식"이라 쓰고, "천안함의 진실"을 쓰고, "의료민영화 반대"라 쓰고, "경찰직무집행법 개정 반대"라고 쓰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 그리고 표현의 자유 보장" 이라고 꼭 쓰기를 바란다. 이렇게 쓰지 않으면 다음 번에는 국민들은 다시 1번을 지우개로 사용하여 2번의 흔적들을 지우게 될지 모른다. 잘나서 선택된 것이 아니므로 자만하지 말고 부디 닳아 없어져 버리는 지우개로 남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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